귀 잘린 고양이와의 행복한 동거  
[한겨레21   2007-02-02 18:10:04]





  
[한겨레] ‘도둑고양이’가 들끓는 지하실 폐쇄를 막은 한강맨션 ‘고양이 엄마들’…포획 뒤 불임수술해 방사하는 ‘TNR’ 실시 이후 용산구 정책도 변화해


▣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한강맨션 고양이는 2006년 한 해 가장 인기 있는 고양이였다. 인기 캐릭터 ‘키디’도 고양이 로봇 ‘도라에몽’도 이보다 더 사랑받지 못했다.

지난해 5월 <한겨레21> 610호가 다룬 한강맨션 고양이는 이른바 ‘길고양이 억류사건’의 주인공이었다. 흔히 ‘도둑고양이’로 불리는 길고양이가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 지하실에 들끓는다며 아파트 관리위원회에서 이 지하실을 폐쇄한 것이다. 지하실에 갇힌 길고양이들은 ‘야옹야옹’ 울어댔고, 이들을 보살피던 ‘한강맨션 생명사랑 모임’(한생사)이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철문을 뜯어냈다. 한생사는 그동안 고양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불임수술을 시켜 방사하던 자칭 ‘고양이 엄마들’이었다.


불임수술하면 성질도 온순해져


생태적인 길고양이 관리 프로그램인 ‘TNR’는 한강맨션 고양이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TNR는 길고양이를 포획(Trap)해 불임수술(Neuter)을 시킨 뒤 제자리에 방사(Return)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길고양이를 보살피던 한강맨션 고양이 엄마들도 자연스레 TNR를 따르게 됐다. 그리고 주변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된 활동은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한생사의 후원 모임인 ‘한강맨션 고양이’ 인터넷 카페(cafe.daum.net/onroadcat)에는 회원 1060명이 몰려들었고, 한강맨션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카툰이 나오는가 하면, 길고양이 ‘알리군’을 모델로 한 식기받침대까지 제작돼 판매되기도 했다. 그리고 용산구청은 올해부터 TNR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1월24일 만난 한강맨션 고양이 엄마 차명임(48)씨는 “1년 사이 고양이 관리가 체계적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차씨는 고양이 일지를 보여줬다. 언제 사료를 줬고 불임수술을 했고 방사를 했는지 꼬박꼬박 적혀 있었다. 이렇게 고양이 엄마들은 4조로 나눠 23동의 한강맨션 길고양이들을 관리하고 있다.

이제 한강맨션 고양이 엄마들의 활동은 TNR를 한 단계 발전시킨 ‘TTVARM’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길고양이를 포획(Trap)해 건강검진(Test), 예방접종(Vaccinate), 불임수술(Alter)을 마친 뒤, 방사(Release)해 지속적으로 관찰(Monitor)하는 것이다. 차씨는 “한강맨션 길고양이는 TNR를 실시한 이래 40여 마리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며 “봄철에 새끼를 낳으면 많아지고, 장마철이 지나면 줄어든다”고 말했다. 한강맨션 관리위원회와의 마찰도 어느 정도 해소됐다. 고양이 엄마들은 지난해 7월 관리위원회와 ‘불임수술을 통해 개체 수를 점진적으로 줄인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썼고, 12월엔 22동 근처에서 잡은 5마리에게 불임수술을 시행했다. 2003년 고양이 엄마들이 활동한 이래 불임수술을 받은 길고양이는 20마리가 넘는다. 지금 한강맨션에는 ‘귀 잘린’ 고양이가 돌아다닌다. 왕경숙(51)씨는 “고양이 왼쪽 귀의 끝 부분을 0.9cm 자르는 ‘중성 고양이’의 국제적인 표시법”이라고 설명했다. 중성 고양이는 번식능력이 없어지고 성질이 온순해진다.


이제는 입양을 기다리는 고양이들


한강맨션 TNR는 올해부터 용산구로 확대됐다. 고양이 엄마들과 용산구 수의사들, 용산구청의 의기투합이 이뤄진 것이다. 1월24일 오후 용산구 후암동 남산동물병원 주성일 원장이 길고양이 한 마리와 유기견 세 마리를 보여주며 말했다.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동물들이에요. 서울시수의사회 용산구 분회 소속 수의사들이 수익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유기동물 분양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용산구는 관내 18개 동물병원과 길고양이 불임수술 및 분양 사업을 계약했다. 계약에 따라 고양이 ‘민원’이 발생하면 동물구조 119팀이 출동해 고양이를 포획한 뒤 동물병원에 데려온다. 동물병원은 고양이 불임수술을 해서 제자리에 방사하거나,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는 일반에 분양한다. 수의사들은 입양 신청을 받기 위해 인터넷 카페(cafe.daum.net/animalshelter)도 만들었다. 유기견도 인터넷 카페를 통해 분양한다. 우용균 용산구청 지역경제과장은 “서울 자치구 가운데 최초로 종합적인 유기동물 관리 시스템을 시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성 길고양이에게 해주는 표식은 한강맨션 고양이 엄마들의 의견을 따랐다. 용산구청 소속 김종화 수의사는 “과천시에서 시행하는 플라스틱 태그는 주민들에게 잘 보여 구정 홍보 효과가 있지만, 고양이 귀에 염증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있다”며 “생명 보호를 위해 시작하는 사업인 만큼 부작용이 적은 귀표시를 이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1월23일까지 용산구에는 41마리의 유기동물 신고가 들어왔다. 36마리가 유기견이었고, 길고양이는 3마리, 토끼 1마리, 비둘기 1마리였다. 이 가운데 6마리가 분양됐다. 우 과장은 “분양률을 높이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용산구 유기동물 분양센터를 만들 거예요. 수의사가 보장하는 건강한 유기동물을 공급하는 거죠.”

한강맨션 고양이 사건은 적어도 용산구의 정책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아 있다. TNR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 차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한강맨션 일부 주민들이 고양이가 서식하는 지하실을 밀폐하는 등 전체 주민의 이해는 완전하지 않다. 일부 주민들은 고양이를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고양이 엄마들은 고양이와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경숙씨는 말한다.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길고양이는 영원한 숙제예요. 인간이 길고양이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지요. 같은 생명인 이상 공존할 수밖에 없지요.”


한강맨션 고양이들의 저녁은 ‘피스!’


저물녘 한강맨션엔 ‘귀 잘린’ 고양이들이 뛰어다닌다. 해가 저물자 고양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귀 잘린 ‘크리스’가 22동에서 23동으로 냅다 가로지르자, 하얀색의 이브가 지하실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사람을 골똘히 쳐다봤다. 사람들은 말없이 지나갔다. 사람과 고양이의 관계는 적대에서 공존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듯했다.


길고양이를 인정하라

없앤다고 없어지지 않으니 TNR과 입양에 관심 돌릴 때



길고양이는 없앤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특정 지역의 길고양이를 모두 소탕한다고 해도, 다시 이웃 지역의 고양이들이 유입되는 ‘진공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길고양이를 도시 생태계의 공존자로 인정하고 부작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미국 ‘스탠퍼드 고양이 네트워크’(SCN)는 길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도시 생태계를 바꾼 사례다. 1989년 스탠퍼드대 학생들과 주민들은 대학 주변에 번잡스럽게 출몰하는 길고양이를 눈여겨봤다. 이들은 곧바로 TNR와 고양이 입양을 시작했다. 포획된 길고양이는 불임수술과 함께 마이크로칩이 이식된 뒤 방사되거나 입양됐고, 방사된 고양이는 철저하게 관리됐다. 학생들은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고 병든 고양이는 치료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1500마리에 이르렀던 고양이는 200여 마리로 줄었다. SCN은 다른 지역에서 실시된 TNR와 달리 해당 지역 주민들의 참여가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민들은 인간의 ‘생명 유기’로 잉태된 길고양이라는 족속을 돌봄으로써 도시 생태계에서 자신의 생태적 역할을 성찰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현재 한국에서는 과천·수원시 등 경기도 지자체에서 초보적 단계의 TNR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목동 3단지, 부산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 신도림동 일부 지역에서는 민간 차원에서 실시되고 있다. 길고양이 블로거 고경원(31·pygmalion.egloos.com)씨는 “지자체 중심의 TNR는 불임수술 횟수만 늘리는 실적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며 “주민의 참여를 유도해 지속적인 사후 모니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한강맨션 고양이 엄마들에서 용산구로 확대된 길고양이 돌보기는 비록 시작 단계이지만 모범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참고: 고경원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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