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조병화
지금 내가 임시로 기거하고 있는
명륜동 1가, 나산빌라 현관에
언제부터인지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매어져 있다.
보기가 측은해서
저녁 집에 돌아올 때마다
먹을 것을 사다 주었더니
내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꼬리를 흔들면서
나를 보며 이리 저리 뛰며 걩걩 짖는다
아침에 집을 나갈 때도
나의 발자국 소리를 분간해서
꼬리 저으며 이리 저리 뛰며 걩걩 짖는다
밤새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을까,
집 밖에서 저 작은 것이,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 측은스럽다
먹을 것을 몇 번 사다 주었다고,
자기를 알아본다고,
저렇게 나의 냄새를 알아보다니,
아, 저 미물이,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돈다.
하기야 이 세상 눈물 아닌 게 어디 있으랴
거 몇 번 먹을 것을 주었다고,
꼬리 흔들며 걩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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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
조병화
내가 옛날,
철모르고 사냥을 갔다가
풀숲에서 한 쌍의 꿩을 발견,
오손도손 함께 있던 암놈을 쏘아 잡은 기억,
세월이 가도 오래오래 기억되더니
오늘,
혜화동 로터리 광장 한 구석에서
아침마다 그 시간 그 자리,
모이를 쪼고 있는 비둘기 수놈 한 마리
홀로,
혹시나 저놈이 그때 살아남은 그 수놈이
비둘기 수놈으로 변신하여
내 앞에 늘 어른거리며
내 가슴을 아프게 쪼고 있는 것이나 아닐른지,
생각되면서
나도 혼자 되어 이렇게 매일 아침을
아직도 혜화동 로터리를 홀로 어른거리는 것을
어찌하랴
오, 대비대자하신 부처님,
이것이 나의 업보이라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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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려 가는 소
조병화
팔려 가는 소보다 쓸쓸한 풍경이
또 있으랴
시골 버스 창 너머로 줄지어 보이는
장터로 가는 소들
나는 그 눈들을 볼 수가 없다
강을 끼고 도는
어느 읍내 가까운 긴 장길
자동차 나팔 소리에 놀라며 피하며
두리번두리번 끌려가는
소들
그 순종에 젖은 한국의 눈들을
어찌 차마 볼 수 있으리
눈을 감으면 어렴풋이 보이는
먼 부처님 미소
죽음을 철학해 왔지만
나는 아직
죽어서 가는 길을 모른다
미련을 덜어내며 이쯤 살아온 길
소망이 있다면 고통 없는 죽음뿐
팔려 가는 소의 가슴으로, 오늘을
내게 내가 팔려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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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조병화
내가 어려서 철없이
잡았던 새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서 날으고 있을까
내가 어려서 철없이
잡아 기르던 베짱이의 영혼은
지금 어디서 울고 있을까
물에서 개울에서 잡아올리던
작은 물고기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서 헤엄쳐 돌까
그리고 알게 모르게 무심코
내 발에 밟혀 죽은 벌레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서 기어다닐까
아, 천지 만물, 같은 생명이거늘
나로 하여 죽어 간 그 영혼들은
지금 어디서 떠돌고 있을까
어머님
이 오만한 과오를 어떻게 사죄할 수 없을까요
내가 철없이 사랑하고, 미워하던
그 많은 인간사 죄를 씻고
당신 곁으로 가는 길을 비춰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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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하늘에서 편안하고 행복하시겠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저 세상에로...
이 세상 인연 다 풀고, 주소도 없고, 길도 없는 곳, 말도 필요없는 곳으로...
우린 서로 주소도 모르리...
그런 먼 곳으로 영영 떠나셨으니 <아, 천지 만물, 같은 생명이거늘...>하시며
우리 모두의 모습을 굽어보고 계실 것 같아요.
평소 파이프 담배를 즐겨 물고 사색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아, 천지만물 같은 생명이거늘>.... 이라고 하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