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 의한 개식용 반대론 ③
[왜 개식용은 문제인가?]
서론
2006년 10월 한국국회보건복지위원회소속 김춘진의원이 공개한 식용견육정책관련 앙케이트 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 55.3%가 ‘견육(개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라고 답했다. 이 조사를 통해서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견육(개고기) 소비량을 추정해본 바, 1회 300g씩 평균 4.6회 취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년간 견육(개고기) 소비량은 165~205만마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관한 견육(개고기)에 대한 옳고 그름은 다양한 주의주장 중, 논리 정연한 의견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감정적인 의견에만 치우치고 있다. 근본적인 원점으로 돌아가, 여기서 견식(개고기를 먹는 행위)의 문제점을 정리 해보고자 한다.
1. 견식은 ‘한국 전통 식문화’는 아니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개를 먹는 행위는 1980년대에 들어 급속도로 퍼진 비교적 새로운 풍습이다. 개를 먹는 습관은 ‘고래의 습관’에서도 ‘조선민족의 전통’에도 없으며, 단순한 부유층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주석①) 모피와 같은 사치이기도 하다. 그 증거로 한국의 빈곤층에서 개를 먹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다. 한국인의 44.7%는 개 자체를 먹어본 적이 없으며, 개를 먹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한해 몇 번 개를 먹느냐’등의 질문에도 ‘1~3회’라는 대답이 전체 64.1%를 차지하고 결국 ‘식문화’라고 불려지는 수준은 아니다. 한국구내에서도 동물애호단체를 시작으로 이 ‘새로운 악습’에 대한 항의활동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2007년에는 견육(개고기)의 ‘인터넷 판매’를 시작한 서울 교외의 업자가 동물애호단체의 항의나 지자체 자숙요청 등에 의해서 폐업상황에 놓여있다.)
한국에서는 현재 개고기를 식용 판매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해져 있으나, 실질적으로 이 법률은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 개고기전문의 고급 레스토랑이 버젓이 영업하고 있으며, 시장에서도 공연하게 개고기가 거래되고 있다. 이는 일부 ‘견육(개고기)이권단체’가 정치가와의 유착으로 법적으로 이 악습을 규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1975년, 개가 가축의 한 종류로 법률에 예속되었다. 1978년, 개가 가축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1984년, 견육스프(보신탕)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1991년, 견육, 묘육(고양이고기)의 식용유통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2. 잔혹한 도살방법에 대한 논리적인 질문
개고기에 대한 다른 관점의 문제점으로, 그‘도살방법’을 지적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개를 식용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도살이 행해지고 있다.
박살(때려 죽임)
교살(목졸라 죽임)
산채로 삶기
산채로 찌기
머리를 매달았을 때 발버둥치면, 센서에 반응하여 밑에서 불이 타오른다. 교살과 소살(태워 죽임)을 동시에 한다.
산채로 우리에 넣거나, 위에서 쇠사슬로 매달아 태워 죽인다. 이렇게 하면 개가 발버둥치고 몸을 비틀어 고르게 타기 때문에, 도살하는 사람은 그저 보고 있을 뿐이다.
시츄 등 몸집이 작은 개는 마대에 넣어 묶은 후, 쇠꼬챙이로 여기저기를 찌른다. 이렇게 하면, 개가 발광하며 죽어 간다. 이 방법은, 피가 넘쳐 흐르기 때문에, 피가 배이지 않게 한 후 처리하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수제 전기 충격기를 사용한다. 의식과 감각은 남아있어도 몸은 경직되기 때문에, 통증에도 반응할 수 없다.
이것은, 과장도 예외도 아니다. 개들은 다른 개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볼 수 밖에 없다. 자신이 먼저 선택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한 채, 꽁무니만 내밀고 얼굴을 감추고 부들부들 떨고 있다. 이러한 것이 한국각지에서 실재로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개를 죽을 때 까지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개는 잠시 바둥거리고, 점점 죽어 간다. 단숨에 죽이지 않고 죽을 때 까지 학대를 가하는 것은, 오로지 많은 한국인이 「고문당한 개를 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 (sexually active) 」라는 미신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단지「고기를 먹는다」 라는 목적이라면,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
이렇게 잔학하기 그지 없는 방법으로 생명을 모독 하는 행위는. 「문화」라고 하는 고상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악습에 지나지 않는다.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정당화하여 용인될 수 없는 것은, 현실을 알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각의 유예도 두지 않고 이 악습을 금지시키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한국의 개들이 처한 현상은 비참하고 장렬하다.
3.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비판
「개를 먹는 것은 한국의 문화이자, 중국인이 원숭이를 먹고, 일본인이 고래를 먹고, 미국인이 소고기를 먹는 것과 같다. 」라는 문화상대주의의 사고는, 한국인의 개를 먹는 것을 정당화하는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네셔널리즘(민족주의)를 보완하는 도구로서 현재에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필자는, 문화상대주의를 오만하게 내세우기 전에, 이 「견식문제」의 본질적인 정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도대체 개라고 하는 동물은 인간에게 있어서 어떠한 존재인가. 개는 인간의 역사 안에서 인간생활의 이익을 위해서 길러지는 생물이다. 개의 life style은 인위적인 것이고, 인간사회의 일부인 동시에, 각각의 본분이 부여되어 있다. 물론 각 문화권 마다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으로 인간과 공통의 「공생주체」로서 존재해 왔다.
가축은 인간에게 자연의 포식자로부터 보호를 받는 대신에, 인간에게 노동과 죽음을 제공한다. 한편, 개와 고양이의 경우는 원초적으로 인간과는 「상이공생 (Mutualism、다른 생물 종이 동소적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서로 이익을 얻는 것이 가능한 공생관계)」의 관계에 있다.
견식 옹호론자가 종종 언급하는 「한국의 문화적, 지리적 특성 때문에, 개 또한 가축으로 간주하는 역사」는 어느 정도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시대적 배경에 한정된 주장이고, 「인간과 개」의 본질적인 관계에 변경을 더한 것은 아니다.
개와 인간의 관계는, 국가와 문화, 시대의 개념을 넘어 그 근원을 확인한다면, 보다 명확한 답이 나올 것이다. 우리의 상이공생의 관계가 1만 5천년 전의 신석기 시대부터 유대되어 온 것은, 이미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되어 있는 사실이다. 개는 수렵, 운송, 안보 등, 영하기 이후 인류가 사회적 구조를 형성하는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충족시키고, 이른바 「하위구성원」으로서 자리잡아 왔다. 부여된 의미에 의해 개는 역사학적으로도 인간사회의 부산물로 정의 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론
우리 견식반대론자가 개를 먹는 것을 문제로 보는 핵심적인 논거는 이하와 같다. 즉, 인간의 편리목적을 위해 변형된 존재인 개를,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파괴적 용도로 변질시키는 것은, 문화의 필연적 결과가 아닌, 비문명적이고 야만적인 행위와 다르지 않다, 라는 것이다.
다른 동물과 자연에 배려하고, 사회적 조화를 지켜나가는 것은 인간의 의무이다. 개가 먹고 싶어서 먹고, 모피가 멋있기 때문에 입고, 신기한 희소동물도 기르고 싶기 때문에 밀수해서라도 기른다, 라는 생각으로는 지구에 미래는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주석①) 근년에는 중국에서 수입등, 개고기가격의 저하인해서 부유층뿐 만 아니라 서민들도 먹는 고기가 됐다.
작성: 2010년 11월 7일
제공 : 모리오카 토시아키
경력: 대학 졸업 후, 서울의 관청에 취직하고, 2년후 스스로 퇴직, 한국정부장학생으로 서울 대학원에 진학(논리교육 전공). 3년후 석사 학위 취득, 외무성 전문조사원으로 북경 일본대사관 정치부에 배속. 북조선내정조사를 담당. 현재는 일본에 귀국. VEGAN.
번역봉사:유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