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란 무엇일까?
‘내일, 우리들이 없는 지구’
후지와라 에이지 저, 소류사 출판
피투성이 패션쇼
한 패션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호화로운 모피를 두른 모델들이 연이어 무대로 등장합니다. 상냥한 미소와 멋진 디자인. 황홀감에 터져 나오는 한숨이 회장 여기저기에서 들려옵니다.
‘어라? 뭐지, 저 빨간색은……?’
맨 앞에 앉아있던 관객 중 한 사람이 중얼거렸습니다. 모델들이 걸어온 자리에 점점이 빨간 얼룩이 묻어있었습니다. 그 얼룩은, 쇼가 진행됨에 따라 번져 나아갑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관객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해서 모피를 입은 모델들이 나옵니다. 그 때, 쇼에 넋을 잃고 아플 정도로 손뼉을 치던 관객들의 이마에 무언가가 떨어졌습니다. 손으로 훔쳐보니, 빨간 피입니다.
모델들이 무대에서 훌륭하게 턴을 할 때마다, 모피에서 빨간 피가 관객들에게로 튄 것입니다. 그 것에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해서 박수를 치는 다른 관객들. 그들의 얼굴은 점점 빨간 피로 물들어갑니다. 등을 돌린 모델이 입고 있는 모피도 새빨갛게 물들어…….
사실, 이것은 WSPA(세계동물보호협회)가 제작한 모피 불매 운동을 위한 선전용 영상입니다. 모피가 사실은 동물들의 피가 범벅이 된 상품이라는 것을 공포와 함께 확실히 전달하는 이 영상을 보고, 저는 한 사냥꾼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제가 사냥꾼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첫 러시아 여행에서 키예프라는 장소를 방문했을 때입니다. 줄기차게 내리는 눈 속을 흐르는 도니에플강을 굽어보는 벤치에 앉아있던 노인이, 알고 지내는 사냥꾼이 설치한 덫에 걸렸던 밍크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입니다.
“사냥꾼은 모피를 얻기 위해 덫을 설치하여 동물을 잡는 일을 하지. 그 사냥꾼은 덫을 설치하고 2주 뒤에 살펴보러 갔었다더군. 그랬더니 한 덫에는 밍크의 발만이 남아있었어. 덫에는 밍크가 물어 뜯은 자국이 있었지. 격렬한 통증과 굶주림과 추위에 둘러싸인 채, 사로잡혔던 밍크가 철제 덫과 싸우다가 마지막엔 자신의 발을 물어 뜯어내어 도망친 게지. 또 다른 덫에는 밍크가 걸려 죽어있었던 것 같지만 덫에 걸린 발이 원래의 4배 이상 부풀어 올라있었고, 양 어깨도 똑같이 부어올라 있었지. 가죽을 벗기니, 가죽 아래 여기저기에서 피가 스며들어, 진득한 젤라틴질이 스며 나와……. 그것들은 모두, 밍크가 죽을 때까지의 고통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확실히 알려줬다고 말했지. 내가 왜 모피 코트를 입는 것을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알겠지?”
그렇게 말하고, 그 노인은 공원을 굽어 보았습니다. 눈 앞에 모피 코트로 몸을 감싸고, 모피 모자, 모피 목도리를 두른 두 명의 노인이 지나갔습니다. 자못 따뜻할듯한 그들의 입가에서 피어 오르는 새하얀 입김이, 가루눈에 섞여 떠다녔습니다.
덫에 걸린 동물의 길고 비참한 고통을 알리는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평소에 자주 보는 모피 코트나 모피 제품에서는, 그것이 동물들의 고통과 흘린 피로 가득 찬 상품이라 것은 거의 실감할 수 없습니다. 상품으로 만들어진 것에는 동물들의 고통을 전하는 흔적이 남겨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겨울에 구 소련연방에 한 나라였던 우크라이나 공화국 등에 가면, 마이너스 30도에 가까운 추위 속에 노인들이 모피코트, 모피모자, 모피 목도리로 몸을 감싸고 산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만, 그 것은 너무나도 따뜻할 것 같고, 러시아의 겨울 풍물시처럼 마저 보입니다.
하지만 그 풍물시의 뒤편으로 눈을 돌리면 어떨까요. 거기에는 러시아 평원에서부터 시베리아로 퍼져나갔던 모피산업 확대의 역사와, 그를 위해 죽음으로 내몰린 동물들의 비통한 울부짖음이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번역봉사: 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