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생물인데 식물은 먹어도 되나요?】
왜 같은 생물(생명)인데 식물을 먹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라고 생각된다.
「인간은 왜 인간을 죽여서는 안 되는가」라는 물음에 답이 있다.
1.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2. 대부분의 경우 죽을 때가지 많은 고통이 있다.
3. 장래의 희망 등 여러 가지 이익을 경험하는 기회를 빼앗는다.
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1은 생명이 있는 것은 소중히 하라는 것이다.
2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도 동물도 쾌감과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있고 고통을 싫어한다.
3은 자의식이 있다면 더욱더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은 모든 생물에게 해당된다.
2는 뇌나 중추신경을 가진 생물에 해당한다.
3은 포유류 몇몇 종에 해당한다.
즉, 인간이 다른 생명을 빼앗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면,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없고
자의식이 없는 생물을 먹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된다. 그 조건 안에서 인간이 먹을 수 있다라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식물」이다.
특히 2에 관해서는, 인간도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것을 싫어하므로 같은 먹을 거리라면
고통을 느끼지 않는 생물을 먹는 것이 평등한 배려가 된다.
또, 같은 생명인데 식물에 대해 종 차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지만,
저서[Animal Liberation]에서 피터 싱어는 「이익에 대한 평등한 배려」의 원리를 제창하고 있으며,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게는 평등한 배려를 하자, 고 하고 있다. 즉, 고통을 느끼느냐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도 동물도 배려의 대상이 되며,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
인간이라는 이유로 동물을 배려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것은, 백인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또는 남성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이나 여성차별을 한 것과 같이 「종 차별」이 된다.
이것들이 본래의 「종 차별」이다.
한편, 식물에게는 (뇌와 척수, 신경이 없고)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없다. 따라서
인간이나 동물과 다르게 평등한 배려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식물과 동물·인간 사이에는
「종 차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종 차별을 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이론이 되지 않도록 한다면 동물의 이용자체가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을
의미하게 되며, 거꾸로 종 차별을 하고, 제멋대로인 이론에 의해서만 동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출서: 일본AADE
번역봉사: lioke234
식물은 영양가가 아주 높고 식물은 깨긋합니다
식물은 자신을 먹음으로서 자손을 퍼트릴수 있는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