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먹어서는 안되면서, 동물은 먹어도 되는 건가요?】
개와 고양이 등의 애완동물과, 짐승에 대한생명에 대한 도덕상 권리에 대해서
의논한다면, 반드시 다른 동물(소・돼지・양・닭 등)과, 식물의 생명을
주장해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고양이 식용반대가 가장 만지만, 다른 가축들에 대한 목소리입니다.
이 의견에 대해서는, 적어도 인간의 가까이에서 음식으로서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 동물만이라도 음식의 카테고리로부터 배제할 수는 없을까요?
라고 하면, 납득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도 고래와 돌고래를 죽이고 있지만, 문화이기 때문에
비판 받을 이유가 없고, 자신들도 타국가의 음식에 해당하는 것을
당연히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된다 해도 타인에게(타국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관용의 자세(관용주의)가 가장 올바르다고 하는 의견이
현재의 일본에서는 많이 볼 수 있지만,
그것은 개인주의 속에서의 「나마저」라는 기분의 변명이 되지 않을까요?
자신의 「올바르다」것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자신의 개를 훔쳐서 먹은 인간과, 자신의 아이를 죽인 인간이 있다고 하면,
악의가 없다면 일절, 반론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않된다면, 이치에 맞지 않게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관용주의의 주장에는,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문화」는 어떤가요?
「문화이기 때문에」라고, 문화를 보편적인 것, 절대적인 것으로서
파악한다면, 과거에 행해진 관습(문화)까지도, 모두
남겨져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생명이 있는 것으로서, 동물도 인간과 같이, 왜 존중하지 않으면 안될까요?
그것은, 선과 악의 가치판단에 의한 것입니다만,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차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이외의 동물에 대한 차별은, 모두 차별로 연결 되 갑니다.
동물이 학대, 학살되기도 하고, 보건소에서 안락사 되는 것에는
많은 분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먹는 것에 관해서는
왜 많은 분들이 반대하지 않지요.
「먹는다」라는 전제가 있다면 방법이 없다거나,
인간이 먹이사슬의 꼭대기라서, 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먹이사슬의 꼭대기라는 의견이 있습니다만, 지구에서 인간만이,
먹이사슬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만이 포식한다는 말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먹는다」는 전제에 대해, 그것은 완전히 인간편의의 말로서,
죽임을 당하는 동물에게 있어서는, 먹기 위해 죽임을 당하던지,
정신이상자에게 학살되던지, 설명해도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같은 것입니다. 가령 말이 통했다 해도, 「먹기 위해서라면
죽인다 해도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동물이 있지는 않겠지요.
고통과 공포의 길이에 다소 차이가 있어도, 공포에 떨고 울부짖으면서
죽어가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식용되고 있는 가축은 인도적으로 길러져 죽고 있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농장, 도살장의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슈퍼에서 팔리고 있는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가격을 보면, 양질의 사료를 먹여
좋은 환경에서 자라, 한마리씩 확실하게 고통 없이 죽이고, 유통하고 있다면,
그런 가격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고통 없이 죽인다면 좋은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왜, 인간 이외의 동물의 생명이라면 상관이 없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일까요?
말을 할 수 없다고 하면, 인간의 아기와 유아도 같습니다.
무언가 요구하거나 전달할 때에는, 울어서 알리거나, 스스로 가능 한 최선의 표현방법을
사용합니다.
그것은 다른 동물도 전적으로 같습니다.
모른 감정과 아픔 등의 표현을 인간에게 전달하기 쉬운 동물만큼,
인간의 마음에 투사해, 의식과의 연결이 쉽기 때문에 감정이입을 하는 정도가 커집니다.
그 정도가 큼만큼, 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심정입니다.
그런데도, 인간과 다른동물을 함께 하지 말아야 한다면
그것은 인간과 종류가 다르기 때문일까요?
외형이 다르기 때문일까요?
종류와 외형이라고 하면,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차별」로서 행해지고 있는데, 아주 잘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차별」= 나쁜 것입니다.
인종차별. 외형의 차별.
자신과 완전히 피부색과 외형이 다른 인종,
몸이 부자유스러운 분에 대한 편견,
얼굴 생김새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그 외의 신체적 특징 등
결국은 동물에 대해서의 차별을 좋은 것으로서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는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살해하면 않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살해할 때 대단히 많은 고통을 주는 것이 된다
*장래, 대면 할 기쁨과 근심 등의 기회를 뺏는 것이 된다.
*주위에 악영향을 준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죽여서는 않된다.
이것은 동물에도 들어맞고, 이 이유로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않된다면, 당연히
동물을 죽여서도 않되는 것이 된다.
이것이 공평한 논리가 됩니다.
(특히 선진국의)인간은 동물을 이용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동물을 이용하지 않아도, 인간의 생활이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꿔 말하면, 사치를 위해서 이용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안습니다.
그렇다면 동물을 이용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가축도 포함한 동물은 인간 제멋대로의 사정으로
윤리를 무시하고 살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동물의 부정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증명도 됩니다.
동물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에 근거해, 먼저 가까운 동물과, 고통이 큰 동물부터
인간 제멋대로의 지배에서 해방해야 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을 거 같은 것은
각각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만,
한가지라도 많은 생명을 구할 수(해방할 수 있는) 있도록
노력 해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먹지 않는 반론으로서,「위법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나쁘다).」
라고 잘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률에 가치판단을 요구하는 것이 되어, 자연주의적 오류가 됩니다.
왜냐하면, 법률은 국가가 국민을 제약하기 위한 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악법도 또한 법이 되기도 하고」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만,
국민이 지켜야만 하는 룰이라고 하지만, 곧 그것이 룰이기 때문에
바르다(선하다)라는 가치판단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출서:일본AADE
번역봉사:김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