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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계간 환경과 생명 2000년 봄호에 실린 글로서, 저자인 장박사님의 허락을 얻어 자료실에 올립니다. 홈페이지 관리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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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권리를 생각한다

장 미 란(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 부소장)


동물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지난해 가을 나는 영주 부석사를 거쳐 울진으로 해서 동해 바다로 자동차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감이 한창 제 빛깔을 낼 때여서 지나는 곳마다 주홍빛의 둥근 열매가 맺힌 감나무가 시골 가을날의 흥취를 흠뻑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그 좋은 가을 여행길에 나는 끔찍한 장면과 마주하게 되었다. 길가에 그대로 버려진 동물들의 주검이 차의 앞자리에 앉아있던 나의 눈에 자주 들어왔다. 그 장면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다. 몇 년 전에 비해 더 자주 눈에 띄는 동물들의 주검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것은 죽은지 얼마 안된 듯 붉은 피가 선명했고 어떤 것은 오래 된 듯 말라붙어 마치 천 조각 같은 모습이었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그 들 중에 다수는 개일 것이고 인근의 산 속에서 나와 다니다가 여기가 자기 삶의 자리가 아닌 것을 알고 당황하여 허둥대던 작은 짐승들도 있을 것이다.
짐승들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몇 년 전 어느 날, 시골길을 자동차로 가는데 저만치에서 낡은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다가오는 시골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어떻게 위험하게 차의 반대 방향으로 저렇게 자전거를 타고 다닐까.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차의 속도를 늦추고 할아버지가 안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차를 몰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내가 방해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상식적인 교통법규에 맞게 정해진 길로 가고 있었는데 저 사람은 규칙을 어기고 반대방향으로 다녀서 운전자를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생각을 해 보니 누가 누구를 방해한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할아버지는 평생 이곳을 마음대로 걸어다니고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이웃에 다녀왔을 것이다. 어느 날 아스팔트를 덮어씌운 자동차 길이 생기면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삶의 습관에 방해를 받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방해를 받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그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거리에서 죽음을 맞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상황은 벌써 오래 전 강원도 고성군에 보이스카웃 세계대회를 위한 캠프장이 생겨 그 곳에 살던 수많은 동물들의 삶이 교란되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음대로 건너다녀야 할 그들의 삶의 근거지가 갑자기 그들이 나타나서는 안될 차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변화된 상황에 놀라 정신을 잃고 허둥대다 차에 치어 죽었을 동물들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떠오른다. 동물의 주검은 그것이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에 놓여 있어서 마음에 직접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는 한 치워지지도 않는다.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사람이 죽으면 그 경위를 조사하고 뉴스거리가 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관심을 끈다. 또 사망신고가 처리되어 살다간 서류상의 흔적도 남는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죽은 동물은 어느 통계자료에도 포함되지 않고 주검마저 방치된다. 결국 동물은 최하의 인간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작은 동물이라도 그 주검을 보면서 우리는 섬짓하고 끔찍한 느낌이 들어 오랫동안 거기다 눈길을 둘 수 없다. 만약 그것이 플라스틱 조각이라면 손쉽게 치울 것이다. 그러나 동물의 주검을 선뜻 치우기 싫은 것도 그것에서 생명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섬뜩한 첫 느낌을 슬쩍 덮어 잊으려한다. 나의 동물 주검에 대한 섬뜩한 첫 느낌은 지나친 거였다고, 옳지 않았다고, 순간적인 감상이었다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첫 느낌에 대한 확신을 쉽게 포기해 버린다. 첫 번 주검 앞에서 타협이 이루어지고 나면 두 번째 주검을 보았을 때는 자신의 감정과의 타협이 더 빨리 진행된다. 이런 심리적 과정을 거쳐 동물의 생명에 대한 인간의 타고난 교감능력과 친화력은 딱딱한 껍질 속에 갇혀 더 이상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나 동물과의 크고 작은 이별 경험을 가지고 있다. 생명이 없는 장난감 인형과의 이별도 늘 곁에 두고 지내며 교감하던 추억 때문에 아픔으로 남는다. 그러나 동물과의 이별 경험이 상처로 느껴지는 것은 함께 했던 시간과 교감했던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동물의 생명성에 대한 인식이 있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교감은 이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옛 사람들은 감나무에서 열매를 딸 때도 늘 맨 윗가지에 몇 개씩은 까치밥으로 남겨 두었다. 인간의 새를 위한 배려였다. 옛 이야기 속에서도 동물과 인간은 늘 공존한다. 인간과 동물의 삶이 서로 얽혀져 있는 것이다. 심청전 속의 토끼와 자라, 흥부전 속의 제비와 흥부의 관계를 보면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사는 삶을 반영해 주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모든 생물체와 상호 연관 속에서 서로 연결된 채 살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과학기술문명의 인간중심적 사고는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해 다른 모든 생물을 수단화하고 희생시키는 것을 정당화해 주었다.

구경거리화된 동물들

21세기에 꼭 없어져야 할 스포츠로 권투와 레슬링을 꼽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와 똑같은 두 사람의 인간이 코피를 흘리고 눈이 금새 퉁퉁 부어 오르고 얼굴이 퍼렇게 멍들어 비틀비틀하면서도 끝까지 링 위를 쫓고 쫓기는 운동을 손에 땀을 쥐며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 비명 소리까지도 링 위의 게임을 실감나게 하는 레슬링을 환호의 소리지르며 보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 사이의 폭력적인 스포츠도 없어져야할 종목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꼭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스포츠 종목은 투우이다. 투우야말로 인간의 잔인성과 공격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스포츠이다. 사람이 가득 찬 경기장에 풀려 나온 소는 낯설음과 흥분된 관중의 호흡에 금새 혼돈된 상태로 빠진다. 투우사는 먼저 철갑을 두른 말을 타고 그 흥분된 상태의 소를 희롱하다 긴 창으로 등을 찌른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소를 이리저리 조롱하다가 단도로 머리를 찌르고 리본을 꽂는다. 온 몸에 피를 철철 흘리며 제정신을 잃어 가는 소를 보며 열광하는 관중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의 숨겨진 폭력성과 천박함에 놀라게 된다. 소가 네 발을 버둥대며 완전히 쓰러지면 다시 마차가 등장하여 죽은 소를 질질 끌며 퇴장한다. 투우사는 위풍당당하게 죽은 소의 귀를 그 자리에서 잘라 관중석에 던지고 그것을 받아 든 사람은 복권에 당첨되어 운수대통한 사람의 얼굴로 환호한다. 남불의 아를르라는 도시의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진 투우에서 일곱 마리의 소가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 그 날 밤 위경련을 일으켰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것을 투우의 잔인함에 대한 보통 사람의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인간의 당연한 반응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동물적 공격성이 자리하게 되는가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사람들은 투우 경기에서 죽은 소고기를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사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도살장에서 운명에 순응하며 조용히 죽어간 소보다 투우경기장에서 흥분된 상태에서 자기의 온 근육을 긴장하여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하다 죽은 소의 고기 맛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투우 말고도 인간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훈련된 동물을 가지고 공연하는 구경거리는 모두 없어져야 한다. 돌고래나 원숭이가 재주피우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같은 생명체로서 동물과 교감하기보다는 동물을 단지 구경거리와 흥미 거리로만 느끼게 된다. 동물끼리의 싸움을 놀이화한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소나 개는 예로부터 인간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던 가축들이다. 옛 조상들은 소를 부려 농사일을 하지만 그런 소를 고맙고 귀하게 여겼다. 시골집 마당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개는 요즘 도시의 애완용 개처럼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며 옷을 해 입히고 머리치장을 해 주고 유난스럽게 안고 다니지는 않아도 가족의 일원이었다. 그런 소나 개를 서로 싸움 붙여놓고 피를 흘릴 때까지 계속하는 개싸움이나 소싸움도 21세기에는 그 흔적을 감춰야 할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동물의 희생

프랑스 사람들 중에는 자식처럼 애완용 개를 키우다가도 여름철 긴 바캉스를 떠날 때가 되면 처치곤란인 개를 몰래 도심에 풀어놓던지 국도 변 어딘가에 슬쩍 내려놓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오죽하면 바캉스 철에는 버려진 개를 모아다 다른 집에 입양시키는 단체가 있을 정도이다. 여기서 우리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자기중심적 사랑의 단면을 본다. 평소에 주인의 사랑을 받던 애완용 개는 타인과 정상적인 애정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소외된 현대인의 정서적 대리만족을 위해 도구로 쓰여졌을 뿐이다. 그리고 주인이 여름 바캉스를 떠날 때는 속절없이 버림을 받는 것이다.
어느 날 큰 트럭의 철창에 실려가던 닭들을 고속도로에서 만난 적이 있다. 닭들은 철창에 칸칸이 나뉘어져 등도 못 펴고 쭈그린 채 차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트럭의 뒤에는 ‘자유농장’이란 이름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요즘 닭들은 하루에 두 번 이상 알을 낳고 때로는 자기가 낳은 알을 그 자리에서 껍질도 안 남긴 채 먹어치우기도 한단다. 얼마나 끔찍한가? 닭들이 자기 자식을 품을 줄도 모르게 된 것이다. 밤새 불을 켜 놓고 잠을 못 자게 하고 계속 알만 낳도록 강요된 닭들. 인간이 자신의 편리와 욕망을 위해 다른 생명체들의 정상적인 삶을 변형시켰고 그 결과 어미 닭의 알을 품는 본능마저 교란된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닭을 단지 알 낳는 기계로 전락시킨 것이다. 병아리가 닭이 되어도 지붕위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것도 그들의 삶이 교란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닭의 울음은 더 이상 아침을 여는 소리가 아니다. 아무 때나 들을 수 있는 소음일 뿐이다.
여기서 나는 동물원을 생각해 본다. 동물원은 아이들을 위한 중요한 동물 교육장처럼 인식되어 어린이가 있는 가족의 나들이에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그러나 근대적 과학정신에 의해 잘 분류되어 여기저기 갇혀있는 동물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어린이들이 과연 동물원에서 다른 생물의 생활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나로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힘없이 누워 있는 동물들을 불쌍한 구경거리로 밖에는 느낄 수가 없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나뭇가지 위를 옮겨다니는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던져주면서 동물들을 희롱할 뿐이다. 동물원은 결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교감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적 장소가 될 수 없다. 동물원은 인간이 동물을 정복할 수 있다는 능력을 과시하며 그 동물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인간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장소이다.
내가 중학생이 되어 생물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곳은 다른 생물들을 이해하고 애정을 느끼며 교감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나는 그곳에서 박제된 동물들에 둘러 싸여 정복자로서 인간의 우월감을 섬뜩하게 느꼈던 것이다. 생물실 역시 인간 외의 다른 동물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지식을 만들고 결국은 동물의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간중심적 근대적 과학관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동물을 대상으로 온갖 과학실험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최근에 형질 변형한 동물에서 인간의 불치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든다는 사실이 텔레비전 9시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 뉴스의 제목은 ‘동물들의 유전자 농장’ 이었다. 돼지 ‘새롬이’, 젖소 ‘보람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유전자 변형된 이 동물들로부터 인간의 질병치료에 필요한 약을 채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물들에게 행해지는 어떤 일도 인간을 치료하고 노화를 방지하며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과학의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합리화된다. 인간중심적 과학은 불치병을 치료할 약을 계속 만들어내고 결국 우리 모두가 영원히 죽지 않게 될 그 날까지 이런 과학적 발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과연 인간이외의 생명들은 인간을 위해 언제까지 희생되고 수단화되어야 하는 것일까?

동물과 인간의 공존은 불가능한가?

낙동강 어귀의 철새 도래지에 댐 건설로 철새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는 환경운동단체의 문제제기에 대해 한 일간신문에서는 “철새가 밥 먹여 주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사람 살기도 힘든데 한가하게 웬 새타령이냐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뒤에야 동물의 권리를 생각할 수 있는 단계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생명들과 연결고리로 얽혀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정확한 생태적 인식을 해야 한다. 인간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재단하여 다른 생명체의 삶의 터를 교란시키면 언젠가 그 피해는 부메랑처럼 인간에게 다시 돌아온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강변에서의 일이다. 나는 자주 자전거로 반포대교에서 한남대교를 거쳐 때로는 잠실까지 다녀온다. 그런데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반포대교에서 갈대밭을 거쳐 자연학습장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한번도 볼 수 없던 광경이 눈앞에 있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송충이들이 시멘트로 된 자전거길 위에 새까맣게 깔려 꿈틀대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많은 송충이가 다 어디서 살다가 길 위로 나온 것일까? 그 중에 어떤 것은 이미 밟혀 죽어 있었고 다른 것들은 아직 살아서 꼬불거리며 시멘트 위를 가로질러 어디론가 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 갈 수가 없었다. 자전거로 달리면 일시에 많은 송충이를 짓밟게 되는 것이다. 그 때 중고등학교 시절 연중행사로 송충이 잡이를 나갔던 기억이 내 머리를 스쳤다. 나무젓가락으로 일정한 양 이상의 송충이를 잡아서 선생님께 검사를 받아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살기 위해 시멘트 바닥 위로 쏟아져 나온 송충이는 예전에 선생님의 감시 아래 징그러워하면서 젓가락으로 집어내던 그 송충이와는 다르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그것을 끌고 이리 저리 송충이를 피하면서 한참을 걸었다. 서울시는 한강변에 있어야 할 습지를 없애고 시민의 교통편의와 휴식을 위해 88도로와 고수부지를 만들었다. 나는 시멘트로 덮어 만든 자전거 길에서 강바람을 쐬며 자전거 타기를 즐기지만 그 때문에 습지에 살던 많은 생명체들의 자연스런 삶의 터전이 심각하게 교란되어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다시 나의 머리 속에는 자기 삶의 자리를 느닷없이 인간에게 뺏기고 놀랐을 생명체들이 떠올랐다. 시멘트 속에 갇혀 허둥대다가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을 그 많은 생명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살아있는 것들의 있어야 할 자리

모든 인간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할 때 불행하다. 자기자리를 제대로 찾아가야 활개를 펴고 안정감을 느낄 수가 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제자리에 있지 못하는 모든 동물들의 삶도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 살면서 제 자리에 있지 못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7년 전 집 근처의 백화점 앞을 지나갈 때의 일이다. 백화점 지하 주차장의 환기통이 인도 한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불룩 올라와 있어 전부터 눈에 거슬리곤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그 환기통 바로 옆 좁은 공간에 무슨 연유에서인지 닭 한 마리가 다리가 묶인 채 있는 것이었다. 그 날 백화점의 닭과 관련된 행사가 있는 것인지 닭고기를 팔려고 광고를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백화점에서 그렇게 묶어놓은 것이 분명했다. 묶인 닭은 그 낯선 풍경과 소리에 얼이 빠진 듯 조그만 움직임도 없이 멍하게 서있었다. 환기통에서 올라오는 매연과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에 취하여 닭은 도시의 소음 한가운데에서 거리의 부속품으로 대상화되어 가고 있었다. 며칠을 그렇게 묶여서 거리를 향해 멍하니 서 있는 닭을 바라보면서 나는 인간의 잔인함과 자신이 잔인한 줄도 모르는 그 무감각에 수치심을 느꼈다.
3년 전 고등법원 뒷길에 자주 갈 일이 있었다. 뒷길이라고는 하나 최소한 5층 이상의 빌딩들이 틈도 없이 서 있어서 그나마 시원스레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는 곳은 유료주차장 공간뿐이었다. 그런데 그 주차장 옆에는 그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단층으로 된 주택이 하나 있었다. 일부러 들여다 보려하지 않아도 그 집의 마당과 입구를 다 볼 수 있었는데 그 곳은 언제나 빈 집인듯 아무 기척도 느낄 수가 없었다. 내가 이 집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 집 마당에 늘 혼자 있는 개 때문이었다. 버려진듯이 보이는 쓸쓸한 눈동자의 그 개는 울타리 옆으로 사람이 지나가도 짓지도 않을 뿐더러 아무런 관심과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개는 자기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도 그 누구도 자기에게 다가와서 상대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지극히 사무적인 분위기의 골목을 오직 일을 위해서만 분주하게 지나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골목 안에 묶여 있는 그 개 한 마리가 내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의 눈길을 붙잡았다. 주변의 분위기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었다. 나지막한 울타리를 넘어 들여다보니 밥그릇에 무언가 먹을 것이 있는 것도 같았다. 아마도 주인이 그 집에 가끔씩 들르는 모양이었다. 주인은 개가 빈집을 지켜주는 기능이 있다고 생각되어 그렇게 개를 묶어둔 것이리라. 나는 그 곳을 지나갈 때마다 그 집 울타리 안에 전시된 듯 묶여 소외된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개를 차마 오래 볼 수 없어 얼른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곤 하였다.

내가 만난 새들

한강 고수부지에서 만나는 새들은 그나마 보기에 괜찮다. 오염된 서울이지만 새들이 강 위를 여유 있게 떼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은 편안해 보인다. 넓은 강폭의 한강은 새들에게 시원하고 널찍한 놀이터가 되어 준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퇴근길 반포대교 위에 차가 밀려 서 있는데 눈에 익은 새들이 다리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새들이 반가워 자동차 창문 밖으로 목을 내밀어 날아가는 새들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새들은 동작대교 쪽으로 가려는 듯 반포대교를 힘겹게 건너고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기 전에 건너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교통체증을 피해 급히 빠져나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이 너무나 힘들고 안쓰러워 보였다. 자동차로 꽉 차있고 매연으로 찌든 다리 위를 건너고 있는 그 새들은 강물 위에서 능숙하게 그림을 그리듯 자유로이 움직이는 새들이 아니었다.
몇 주일 전 반포대교 위의 새들과는 다른 행복한 새떼들을 강화도 옆의 작은 섬 석모도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한가한 주말 오후의 들판 위를 물결치듯 떼지어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 날 이후 나는 우연히 강화도에서 온 쌀을 사서 밥을 짓게 되었다. 그 밥을 먹음으로 그 새들의 수고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자기의 자리에서 삶을 자연스레 누리는 새들을 생각하면서 나와 새와 쌀이 하나가 된다.
새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는 우연히 새들과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다. 서울 한복판 종로거리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새도 기억에 새롭다. 어울리지 않는 복잡한 장소에 있는 새는 안쓰러워 보였지만 그래도 생명이어서 반갑고 고맙기도 했다. 보신각 맞은편 옛 화신백화점 자리에 들어선 주위의 다른 건물들 위에 군림하는 철제 건물 국세청 빌딩은 언제 보아도 눈에 거슬린다. 그 건물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광화문 쪽으로 가려는데 등뒤에서 맑은 새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의 귀가 번쩍 띄었다. 나는 그 소리가 지하철 속에서 듣던 녹음된 새소리가 아닌가 의심했다. 그런데 돌아서서 주위를 살펴보니 복잡한 인도 한 곁에 서 있는 나무 위에서 새 한 마리가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가 어디라고, 자기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곳에서 그처럼 맑고 풋풋한 소리로 지나가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그 새의 철없는 순진함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새가 너무 반가워서 한참동안 가슴이 설레었다. 도심 속의 인간은 새소리 하나에 이처럼 행복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에게 이제 그 장소는 새를 만났던 즐거운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가을에 조선 후기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된 서울 성북동 입구의 간송미술관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곳은 오래된 건물과 마당을 원형대로 잘 보존하고 있었다. 나는 미술관 마당에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닭과 고양이를 만났다. 오래된 나무와 흙, 얕은 도랑에서 흘러내리는 물, 편안하게 돌아다니는 닭들, 그 옆을 스쳐 지나다니는 고양이가 모두 함께 잘 어울렸다. 어디를 가나 옛것을 휘젓고 뒤엎어 새것을 만드는 서울의 한 복판에서 흙과 나무를 편안히 놔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곳 마당의 닭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바싹 옆으로 다가가도 태연했다. 그 닭들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평화롭게 살아서인지 사람들을 자기를 해칠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로 느끼지 않는 듯했다. 관람객들이 오가는 도랑 건너 쪽으로 풀쩍 날아가는 모습은 양계장의 닭이나 철창 속의 닭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나는 그 닭들을 통해 사람과 동물의 화해가능성을 보는 듯했다.

인간은 항상 동물보다 존엄한가?

인디언들은 사냥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잡혀 죽을 동물의 영혼을 위해 정중히 의례를 치른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사냥을 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를 부렸다. 인간이 한 인간을 죽였을 경우 죽은 사람이 아무리 악인일지라도 용서받지 못할 살인죄를 지은 것으로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반달곰 같은 멸종위기의 동물을 밀수렵, 밀도살하는 것은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잘못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돌아올 피해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잡는 것이 더 크다. 그것은 종 자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흔히 최하의 인간을 비하할 때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한다. 아무리 형편없는 인간도 짐승보다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표현이다. 짐승은 제 배가 차면 먹을 것이 옆에 있어도 고개를 돌린다. 사람은 미래의 허기를 미리 상상해 계속 쌓으려 한다. 그런데 계속 쌓다보면 본말이 전도된다. 미래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쌓기 시작했지만 점점 쌓는 일 그 자체에 매이고 집착하여 원래의 목적인 행복은 놓쳐버리게 된다. 생태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축적의 집착보다는 스스로 만족하는 동물의 본능이 더 지혜롭다. 그런데도 인간은 스스로를 항상 동물보다 존엄한 존재로 인식해 왔다. 이기적 인간중심주의는 생태계의 서열구조를 분명히 그려놓고 서열구조상 하위의 생물종을 희생시키고 수단화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렇다면 동물 자체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이 문제는 인간의 삶이 제자리를 다시 찾는 것과 연결된 문제이다. 인간의 삶이 제자리를 찾는 다는 것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 존재의 근원에 대한 생태학적 통찰력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와 그물코처럼 얽히고 설켜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내 존재의 일부이다. 다른 존재의 희생과 불행을 딛고서 인간만 살아 남을 수는 없다. 인간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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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교육심리학과에서 “노인의 죽음에 대한 태도”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프랑스에 유학하여 파리의 사회과학대학원(EHESS)에서 사회심리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귀국후 이화여대에서 청년심리학을 강의하였으며 현재 대한YWCA연합회 지도력양성위원이며 한국알트루사 부설 여성상담소 부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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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합니다. imagefile 생명체간사 2014-05-14 39520
공지 서울시의 동물복지위원회 운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file [1] 생명체간사 2013-08-27 43591
공지 강동구가 동물과 함께 살아갈 도시를 만들어주세요 imagefile 생명체 2013-08-01 53089
공지 강동구의 전향적인 동물보호조례제정을 환영합니다.(조례안 전문 포함) imagefile 생명체 간사 2013-07-07 54498
공지 제주특별자치도의 허술하고 위험한 동물조례안의 개선을 촉구합니다. imagefile 생명체간사 2013-05-30 58354
공지 (탄원서)거제 씨월드의 돌고래 수입을 단호히 반대합니다. imagefile [1] 생명체학대방지포럼 2013-05-01 72110
공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바랍니다. 동물학대없는 나라를... imagefile 생명체간사 2013-01-24 64278
공지 Good Bye to Ms. Fusako Nogami, imagefile [1] 박창길 2013-01-17 207680
공지 2013년도 생명체학대방지포럼 전체 모임 공고 생명체 간사 2013-01-16 41385
공지 교육감 후보 동물교육정책 질의서 imagefile 생명체간사 2012-12-11 37880
공지 광주광역시 동물보호조례 전부개정조례안(통과안) file 생명체간사 2012-12-03 59578
공지 광주시의회에 동물조례안을 개선해달라는 여러분의 의견을 보내주십시요. imagefile 생명체간사 2012-11-28 43919
공지 안철수 진심캠프의 20대 동물현안에 대한 정책 답변서 imagefile 생명체 간사 2012-11-21 66462
공지 (공지) 문재인캠프의 동물정책 답변서 imagefile 생명체 간사 2012-11-06 66782
공지 동물을 위한 공약을 후보자 SNS를 통해 요구합니다 imagefile 생명체간사 2012-10-20 49622
공지 (보도자료) 제18대 대선후보 동물정책 촉구 서명운동 imagefile 생명체간사 2012-10-06 46978
공지 대선후보 동물정책질의서 imagefile [1] 생명체학대방지포럼 2012-09-08 42150
공지 조례개정을 위한 민원을 부탁합니다. 생명체간사 2012-08-31 50784
공지 정부의 '과학포경'에 반대하는 행사안내 image 미키 2012-07-16 39962
공지 서울시 조례안( 시민단체안 초안) file [1] 생명체 간사 2012-06-19 38066
공지 서울시 조례제정 진행상황 imagefile [2] 생명체간사 2012-05-30 40207
공지 서울시가 전향적인 동물조례를 만들어주십시요. file [12] [73] 생명체간사 2012-05-07 88662
공지 서울시 동물조례입법예고 file 생명체간사 2012-04-13 35991
공지 적극적인 동물보호 의견을 개진하는 지역구 후보님들 imagefile 생명체학대방지포럼 2012-04-11 44701
공지 국민생각 비례대표 이면우후보님의 답변서 생명체학대방지포럼 2012-04-10 45523
공지 녹색당 장정화후보님의 답변서 생명체학대방지포럼 2012-04-10 41039
공지 진보신당 홍세화대표님의 답변서 생명체학대방지포럼 2012-04-10 47149
공지 새누리당 민병주 비례대표님의 견해 imagefile 생명체 2012-04-10 38124
공지 노회찬후보의 동물보호정책 imagefile 생명체 2012-04-10 37327
공지 정동영후보의 생명관 imagefile 생명체학대방지포럼 2012-04-09 45956
공지 이부영(강동갑)후보 생명체학대방지포럼 2012-04-09 37941
공지 윤선진후보(대구서구)의 적극적인 동물보호공약 공지 생명체 2012-04-09 36644
공지 동물학대방지 4.11총선질의서 imagefile 생명체학대방지포럼 2012-03-25 37401
공지 4.11총선 동물보호정책질의서에 대한 안내 imagefile 생명체간사 2012-03-25 36726
공지 동물공약을 촉구하는 동물단체의 철장행사및 유명정치인 질의방문 imagefile 생명체간사 2012-03-23 36304
공지 유명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동물공약을 촉구하는 서명 행사안내 imagefile 생명체간사 2012-03-16 35594
공지 동물복지를 외면하는 동물복지축산인증기준에 대한 성명서 생명체간사 2012-03-02 44441
공지 동물복지인증기준에 대한 의견조회 [1] 생명체 2012-02-20 40993
공지 정부 동물복지축산인증제도의 문제점과 의견서 생명체간사 2012-01-30 35630
공지 한우를 굶겨죽이는 관행을 중단하라. [1] 생명체 2012-01-09 50044
공지 일본 : 동물실험법 규제를 위한 서명입니다. 도와주세요! [2] 미키 2011-12-15 37371
공지 투견도박 금지를 위해 누구에게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1] [1] 동물지킴이 2011-11-21 39335
공지 동물보호법_시민샘플의견서 file [2] 생명체간사 2011-10-28 38064
공지 나경원 박원순 후보의 동물공약비교표 [1] 생명체간사 2011-10-26 36601
공지 도가니 사건으로 부터 동물단체회원은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 동물지킴이 2011-10-23 36740
공지 10.22일(토) 동물보호 공약을 촉구하는 동물인형놀이 한마당 윤창렬 2011-10-20 37156
공지 동물보호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 첨부파일 다운로드 file 윤창렬 2011-10-17 35571
공지 서울시장후보의 동물보호정책 촉구를 위한 1인 시위 안내 [1] 생명체 간사 2011-10-15 36643
공지 동물지킴이가 서울시장 후보자에 던지는 질의서 생명체간사 2011-10-07 35919
공지 제4회 동물복지포럼 동물실험지침안 발표회 8월 30일 생명체 간사 2011-08-25 34635
공지 2011년 개정 동물보호법에 대한 평가 [3] 생명체간사 2011-07-25 45113
공지 모피 패션쇼 저지및 시위예고 imagefile 생명체 간사 2011-06-01 44450
공지 (기자회견) 정부의 축산선진화 방안 유감 생명체간사 2011-05-08 36154
공지 정부의 5월 6일 TF과제 발표를 앞두고 생명체 간사 2011-05-05 37970
공지 동물구제를 요청하는 청원서 [2] 생명체 간사 2011-04-25 38095
공지 한국교회의 소중한 고백 생명체간사 2011-04-06 37438
공지 축산허가업체 계량평가점수중에 동물복지점수는 1점도 넣지 않아서 복지를 배제하였다 [6] 생명체 간사 2011-03-26 39294
공지 구제역 참사. 사회적 성찰과 실천적 대안 imagefile 생명체 간사 2011-03-17 39705
공지 힘내라 일본! [2] 생명체 간사 2011-03-14 42449
공지 구제역사태, 정부당국과 국민들께 드리는 호소문 생명체간사 2011-03-08 41723
공지 구제역 사태에 대한 교수 지식인 200인 호소기자회견 생명체간사 2011-03-08 39731
공지 이 참혹한기록에 항의합니다. [1] 생학방간사 2011-02-11 39776
공지 반생명문화에서 벗어나 생명 존중문화로 나아갑시다. 생명체간사 2011-02-08 41010
공지 (보도자료) 구제역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및 항의방문 image [1] 생명체학대방지포럼 2010-12-24 39201
공지 보도자료 구제역 생매장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3] 생명체학대방지포럼 2010-12-12 40481
74 2002년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보고서 file 생명체학대방지포럼 2005-01-18 9412
73 개고기 도축 合法化와 한국의 문화 file 朴昶吉 2005-01-18 10436
72 개고기 식용 법제화 반대 청원서 file 생명사랑실천운동협의기구 2005-01-18 10510
71 환경운동에서 바라본 동물학대와 개고기도축법제화 문제 file 지킴이 2005-01-18 175427
» 동물의 권리를 생각한다 file 장미란 2005-01-18 10053
69 개고기도축 법제화에 대해 환경운동단체의 입장을 밝힌다 file 지킴이 2005-01-18 6782
68 노래: "사람이나 새나" 이건직어린이, 백창우 곡 imagefile 지킴이 2004-05-19 10802
67 2002년 정부동물보호법개정안에 대한 검토의견서 file 지킴이 2004-02-05 11226
66 조류독감1인 시위 file 박창길 2004-01-17 10587
65 수원세계생명문화선언문 전문 박창길 2004-01-16 10398
64 오리생매장 imagefile 지킴이 2003-12-29 12448
63 참고사진 오리 생매장 imagefile 지킴이 2003-12-27 10886
62 이오덕 선생님의 사진 imagefile 운영자 2003-08-27 9796
61 음반비디오물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관리자 2003-08-04 8859
60 생매장당하기 위해서 몰려가는 돼지들 imagefile 돼지의 친구들 2003-07-21 10596
59 돼지생매장현장들 imagefile 동물지킴이 2003-07-08 11189
58 구제역돼지매장사진 imagefile 동물지킴이 2003-07-08 18433
57 돼지생매장감사청구관련사진 imagefile 동물지킴이 2003-07-08 20557
56 우크라이나의 떠돌이개에 대한 동영상 관리자 2003-04-13 10696
55 동물보호법 개정요구를 위한 중앙청앞 1인 시위(사진) imagefile 지킴이 2003-02-11 11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