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인 동물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현재 동물보호법의 근본적인 강화가 필요하다.
구제역으로 인해 많은 동물들이 살처분을 당했다. 언론에서는 방역에 동원된 공무원이 과로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 보도했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동물들을 매립하는 과정 중에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살처분에 동원됐던 사람들은 동물들이 생매장 되면서 울부짖는 소리와 눈빛이 기억에 남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겪기도 한다고, 그리고 매장한 동물들에서 나온 침출수가 주변 농지나 지하수로 흘러나오는 2차적인 환경오염 문제까지 일으키고 있다고 아주 상세히 보도했다.
하지만 뉴스나 신문을 비롯한 많은 언론들이 간과한 점이 한 가지 있다. 구제역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명 손실이나 경제적인 손실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면서, 왜 산 채로 묻히는 동물들의 입장은 보도하지 않는 것일까? 동물들의 생명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일까?
나는 구제역 살처분 소식을 접하면서, 얼마 전에 봤던 영화 <줄무늬 옷을 입은 소년>이 떠올랐다. 많은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학살당하는 장면을 보며, 살처분 당한 아무 죄 없는 동물들의 눈빛이 떠올랐던 것은 왜일까?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과 인간이 동물을 죽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인간을 비인도적으로 죽인 것과 지금도 벌어지는 인간이 동물을 비인도적으로 죽이는 것이 무엇이 다른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치는 유대인은 종자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유대인 학살 행위를 정당화 시키려 했다. 이런 논리는 인간과 동물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동물에 대한 비인도적인 학살은 가능하거나, 혹은 부득이할 경우 허용될 수도 있다는 것과 같다. 우리가 동물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수많은 종차별주의자들과 우리는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나치가 강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약자이던 유대인들을 학살하면 안된다고 비판하듯이, 지금도 우리가 인간이 강자라는 이유만으로 약한 동물들을 무자비하게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학살하면 안된다고 비판받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적으로 약자인 자들을 돌보고 보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학대를 비롯해서 다시는 살처분과 같은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게끔 개선되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째, 현재의 동물보호법에 동물학대에 대한 조항이 다소 확대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은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 자체를 학대로 규정하지만, 그렇다면 동물들에게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우리의 공장식 축산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제7조(동물학대 등의 금지) ①누구든지 동물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개정 2008.2.29> 1.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2.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 3. 그 밖에 수의학적 처치의 필요, 동물로 인한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의 피해 등 농림수산식품부령이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는 행위 ②누구든지 동물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학대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개정 2008.2.29> 1. 도구·약물을 사용하여 상해를 입히는 행위. 다만,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등 농림수산식품부령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한다. 2. 살아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신체를 손상하거나 체액을 채취하거나 체액을 채취하기 위한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 다만, 질병의 치료 및 동물실험 등 농림수산식품부령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한다. 3.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 다만, 민속경기 등 농림수산식품부령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한다. 4. 그 밖에 수의학적 처치의 필요, 동물로 인한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의 피해 등 농림수산식품부령이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상해를 입히는 행위 ③ 누구든지 제9조제1항의 규정에 따른 보호조치의 대상이 되는 동물(보호조치 중에 있는 동물을 포함한다)을 포획하여 판매하거나 죽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질병 등 농림수산식품부령이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인도적인 방법에 의하여 처리하여야 한다.<개정 2008.2.29> ④소유자등은 동물을 유기하여서는 아니 된다.
좁은 케이지에 갇힌 닭들이나, 임신한 어미 돼지가 좁은 스톨에 갇혀 감당해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도저히 동물들이 감당할 수 없는 극단의 스트레스이다.
특히나 자연 상태의 돼지는 특별한 훈련이 없이도 잠자리와 배설할 곳을 구분하고, 후각이 예민하게 발달 된, 코로 땅을 파 땅속의 풀뿌리를 섭취하는 습성이 있는, 무리지어 생활하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하지만 현대의 기업화된 축산시스템 속에서 돼지는 최대한 많은 양의 고기를 생산해내기 위한 욕심 속에서 밀집사육 방식 속에 살아가게 된다. 돼지의 흙을 사랑하는 본능은 무시될 뿐이다. 그냥 살이 찌면 찔수록 좋은, 규격화된 몸집 만들기에 한창이다. 자연적 수명만 10~15년 정도인 돼지가 태어나 도축장으로 가기까진 160여일 남짓한 시간이 걸린다. 입장 바꿔 우리의 수명이 저 정도로 줄게 된다면, 우리가 받게 되는 스트레스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둘째, 공장식 축산이 행해지는 대규모 동물농장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돼지는 배설물이 잘 처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살아가는데, 환기와 통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암모니아나 황화수소, 이산화탄소 등의 높은 농도로 돈사 내 공기의 오염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고온스트레스와 일교차에 민감한 돼지가 이런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항력은 당연 약화되고, 질병에 대한 노출도 취약해진다.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이 가축들의 대량 생산에 위협이 되자, 이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항생제 사용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미 유럽연합을 비롯해 여러 국가들은 항생제 사용을 점진적으로 감소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OECD 국가 중 항생제 사용 최대인 우리나라 축산업의 현실을 보면, 우리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셋째, 동물보호법에 보장된 감시관 제도의 활성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동물법 19조를 보면, 대부분 동물학대에 대한 감시 위주로 감시관의 역할이 한정되어 있는 느낌을 없잖아 받았다.
제19조(동물보호감시관) ① 농림수산식품부장관, 시·도지사 및 시장·군수는 동물보호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그 소속 공무원 중에서 동물보호감시관을 지정하여야 한다.<개정 2008.2.29> ② 농림수산식품부장관, 시·도지사 및 시장·군수는 동물에 대한 학대행위의 감시와 학대받는 동물의 구조·보호를 위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민간단체가 추천하는 자 그 밖에 동물보호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를 동물보호명예감시관으로 위촉할 수 있다.<개정 2008.2.29> ③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따른 동물보호감시관 및 동물보호명예감시관의 자격·임명·위촉 및 직무범위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④동물보호감시관 및 동물보호명예감시관이 제3항의 규정에 따른 직무를 행하는 때에는 누구든지 동물특성에 따른 출산, 질병치료 등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방해 또는 기피하여서는 아니 된다. ⑤동물학대의 신고를 접수한 동물보호감시관은 동물의 보호와 학대방지를 위하여 동물학대행위자로부터 피학대동물을 격리하여 동물보호전문기관에 인도하거나 그 동물의 치료가 필요한 때에는 치료기관에 인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개정 된 동물보호법 시행령 9조를 봐도, 감시관의 직무는 주로 동물학대에 대한 지원과 보호에 대한 업무이다.
제9조(동물보호감시관ㆍ동물보호명예감시관의 자격 등)⑦ 명예감시관의 직무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동물보호ㆍ복지에 관한 교육ㆍ상담ㆍ홍보 및 지도 2. 동물학대행위에 대한 신고 및 정보 제공 3. 제2항에 따른 동물보호감시관의 직무 수행을 위한 지원 4. 학대받는 동물의 구조ㆍ보호 지원 |
소, 돼지, 닭 등을 사육하는 축산업가에도 감시관 제도가 보다 활성화되어, 학대 아닌 학대를 받고 있는 동물들이 혜택을 받아야 한다. 동물보호감시관이 있어도 그 역할이 매우 소극적인 지금, 이렇게 범위를 넓혀 나가는 것이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 농장의 소유자에게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책임 의식 또한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효율적인 일은 없다.
신체적인 폭력만이 폭력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한 생명을 비인도적인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자체가 어찌 보면 우리 모두 많은 동물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은 폭력을 휘둘렀다고 볼 수 있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지금이 아닌가 싶다. 나치가 유대인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했듯이, 우리와 동물들을 분리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동물들이 행복해야 우리 인간도 행복할 수 있다고. 삶 속에서 인간과 동물은 하나의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동물들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에, 법으로나마 우리가 그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동물의 복지는 물론 생명의 안전을 도모하는 취지 모두 달성할 수 있는 동물보호법의 새로운 면모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