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사태를 통해서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한 어떠한 성찰이 있었는가?
그리고 이러한 성찰이 정부의 제도적 개선 대책에 얼마나 반영되었는가?
5개 종교는 1월 17일 “반생명적 축산정책의 종식을 기원하는 범종교인 긴급토론회”를 열었고, 2월 8일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 4층 소회의실에서 “구제역 사태를 맞은 범종교인 공동기자회견”을 통해서 “구제역 사태를 바라보는 범종교인의 입장과 기도”를 밝혔다. 5가지 항목으로 발표된 내용 속에서 생명에 대한 인식 전환, 공장식 사육으로 인한 동물의 고통과 육식산업의 변화의 필요성, 과도한 육식의 절제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 3월 1일에 “소박하고 공손한 인간의 밥상이 세계평화의 길”이라는 생명평화선언도 나왔다.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도 4월5일에 발표한 “생명존중 문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제언”에서 인간의 탐욕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고통에 대해서 참회한다“고 하면서, ”생명체들이 조화와 평화를 이루는 일에 앞장서서 기도할 것”이라 하였다.
또 신문의 지면에 공장식 축산은 안 된다. 축산이 바뀌어야 한다는 수많은 칼럼들이 나왔다.
심지어는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도 친환경복지축산, 복지축산에 대한 칼럼을 일간지에 기고되었다. 강우일 천주교주교회의의장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지적하셨다. 이런 내용은 이 땅에서 온갖 학대와 착취를 당하면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들에게는 한반도 들어보지 못했던 “복음”에 견줄만한 메시지였다. 어쩌면 김경호 목사나 몇 몇 종교지도자의 메시지는 자력(自力)으로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저주받은 삶을 살아가는 이 땅의 동물들에게는 예언자적인 메시지로 들릴 것이다. 킬릴필드와 같은 잔혹한 대량 살육 가운데에서 피어난 우리사회의 진솔한 생명에 대한 귀한 반성의 소리였다. 또 정부도 축산업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말로만 하던 복지축산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무엇보다도 과도한 육식의 절제가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 된 것은 매우 경이로웠다. 그러나 동물들에게 지옥 같은 생존으로 부터의 구원의 길은 멀어 보인다.
그런데 이 땅의 축산동물들에게 인도적 배려의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일반인은 물론 정부의 살처분 정책 등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지식인들조차, 이제 정부의 대책이 나왔으니까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볼 때 부정적이다.
첫째, 관련업계들은 복지축산이나 지속가능한 축산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농협이 주관한 2월말에서 3월초에 열린 지속가능한 축산에 대한 토론회의 내용에 이와 같은 점들이 나타나 있다. 2월 22일 “지속가능한 한우산업 발전방안모색”, 2월 24일 “지속가능한 양돈 산업 발전방향모색을 위한 좌담회”, 3월 8일 “AI이후 가금산업 발전방향모색 좌담회”, 3월 11일 “낙농부분 좌담회” 등이 개최되었으나, 토론회 제목이 “지속가능한 축산”임에도 불구하고, 토론내용에 대한 녹취록을 열람해 보면, 친환경복지축산이나, 지속가능한 축산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토론의 내용이 방역에 대한 책임문제, 살처분과 재입식에 대한 보상 문제, 생산기반의 확보에 관한 문제밖에 논의되지 않고 있다.
둘째, 위에서 본 각종 세미나의 내용이 이러한데, 정부 TF팀의 구성이 농협이 주관한 토론회의 참가인사 들과 다르지 않다.
정부의 TF 구성 팀은 아마도 기존의 축종대표들과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축종관련 인사이외의 시민들의 참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여론 수렴과정에서도 일반시민의 의견개진의 기회가 전혀 없다.
셋째, 축종대표들은 물론이고 농협의 대표까지도 동물복지에 대해서 시기상조이거나 맞지 않다는 반대 입장을 개진하였다고 한다.
넷째, 국무총리실에서 발표한 내용이 축산업 선진화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일부 언론들도 “방역의 선진화는 있어도, 축산의 선진화는 없다”(중앙일보, 3월 25일), “이런 대책으로 ‘구제역 재앙’을 막을 수 있나”(경향신문, 3월 24일 사설)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5월 6일 발표할 정부의 세부시책을 볼 때 그런 내용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분석해보았을 때는 정부의 복지축산의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구제역을 통해서 동물의 권리를 소중하게 생각한 분들의 비판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