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한국교회협의회가 4월 5일 발표한 구제역사태에 대한 제2차 성명서로서 기독교 교회협의회 홈페이지 자료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성명서에는 국무총리 주관의 방역및 축산업선진화대책에 대한 적절한 비판과 농장동물을 생명으로 인식하자는 훌륭한 의견이 담아졌다. 성경을 잘 못 해석한 것이 오늘날의 구제역 사태를 일으킨 근본원인중 하나라고 고백한다.
"생명체들이 조화와 평화를 이루는 일에 앞장 서서 기도하겠다"는 한국교회협의회에 감사드린다. 이 땅에 학대받는 농장동물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가지게 하는 말씀이다.
생명체학대방지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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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존중 문화를 위한 한국교회의 제언
“너희와 함께 있는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물, 곧 너와 함께 방주에서 나온 새와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에게도, 내가 언약을 세운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울 것이니, 다시는 홍수를 일으켜서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들을 없애는 일이 없을 것이다.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창세기 9: 10~11)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에 은총을 내리셔서 세상에 생명이 가득하기를 원하신다고 확신합니다. 생명 세계를 관리할 책임을 위임받았다고 고백하는 우리는 근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잔혹한 생명 도륙의 장면을 목도하며 인간의 이기적 탐욕과 다른 생명체를 향한 살육을 조장하고 그 현장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죄책을 고백합니다. 그동안 기독교는 인간만이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존재라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을 향해 자연과 다른 생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창1:28)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관리하라는 뜻이었지만, 기독교는 생명에 대한 지배권, 파괴권으로 곡해하였습니다. 사실 성경을 이렇게 잘못 해석한 것이야말로 오늘날 구제역 사태를 일으킨 근본 원인 중 하나임을 고백합니다.
지난해 11월 29일 시작된 구제역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잔인하게 살처분 된 가축 수가 350만 마리를 넘어섰습니다. 구제역 발생 석 달 만에 우리나라의 소와 돼지 중 25%가 한꺼번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자식 같은 가축을 하루 아침에 땅 속에 묻고 차마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는 축산농가의 아픔과 상처에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극심한 공포와 처절한 절규 속에서 제대로 항변도 하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가축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합니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죽이는 자나 죽임당하는 자나 생명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존재로서의 존중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끔찍한 살해였습니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를 살아있는 그대로 구덩이에 생매장하고, 삶의 본능으로 발버둥치는 가축들을 매몰차게 묻어버리는 장면은 생각만으로도 우리를 전율케 합니다. 전염병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살아있는 생명체를 향해 저지른 우리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축산 동물이 인간에게 육류를 공급하기 위해서 사육되어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지만 우리는 모든 생명의 존귀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축산동물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공산품이 아니라 피와 살이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이런 생명체를 함부로 죽이는 것은 곧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더 끔찍한 재앙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축산동물들의 구제역은 그들만의 질병이 아닙니다. 그로 인해 축산 농가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매몰로 인한 제2차, 3차 환경오염은 결국 인간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구제역 파동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데에는 정부 당국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대응에 심각한 원인이 있음을 우리는 지적합니다. 정부는 효과적인 초기 대처에 실패하였고, 신속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살처분으로 일관하여 위기를 덮기에 급급했던 데 큰 책임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구제역 발생 4개월이 지난 3월 24일 정부가 발표한 ‘축산업 선진화 대책’에 대해서도 우리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제목만 ‘축산 선진화 대책’일 뿐 사실은 초기 방역 체계 개선에 초점을 둔 ‘방역 선진화 대책’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정부 대책에는 이번 구제역 사태의 근본 문제인 밀집 사육에 대한 대안이 빠져있고, 생명체로서 축산동물의 복지에 대한 부분은 언급조차 없으며, 소비자들의 식품 안전 대책 또한 반영되어 있지 않아 축산 산업 구조의 전면적인 쇄신책을 기대한 국민들을 실망시켰습니다. 더군다나 방역의 1차 책임과 백신 비용을 농가에 전가하여 부담을 가중시켰고, 심각한 문제로 지적받은 살처분과 매몰 우선의 정책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정부의 대책은 근본적인 문제를 성찰한 흔적을 찾기 어렵고 서둘러 마련한 임시조처에 불과합니다.
정책적이고 기술적인 방안과 함께 보다 근원적이고 중요한 것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인식전환입니다. 현재 축산동물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육류를 공급하는 시장 원리에 기초한 공장식 축산방식으로 사육되고 있습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인간은 가축의 본성을 억압한 채 최대한 빨리 몸집을 불릴 사료와 성장촉진제를 먹이며 비좁은 우리에서 자라도록 종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축산동물은 더 이상 생명체가 아니라 단순히 상품이나 수입 수단에 불과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근원적으로 생명으로서 존중받을 권리와 최대한 존엄하게 살고 죽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탐욕에 기반한 죄악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인간은 이 태초의 관계를 조율하고 유지할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 인간의 과도한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생물종을 무차별 살육하는 것은 ‘다시는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을 없애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노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반역입니다. 그것은 한 몸 공동체인 생태계의 파멸을 재촉하는 일입니다.
이에 이번 구제역 사태를 겪으며 생명 경시 풍조를 확인한 한국교회는 다음과 같이 한국 정부와 사회를 향해서 제언합니다.
1. 축산 동물에 대한 인도적인 살처분은 국제동물기구(OIE)가 정한 지침대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번과 같은 끔찍한 생매장은 명백히 금지해야 합니다.
2. 축산동물의 집단 전염병 확산은 동물들이 면역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 곳에서 많은 수의 동물을 획일적으로 대량생산하는 현재의 축산 형태를 개혁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공장식 축산 방식을 지속가능한 축산방법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합니다.
3. 축산 동물에 대한 인도적인 처우를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 축산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복지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대규모 축산 기업가들은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은 채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축산업을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인간의 삶과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생명체라는 관점으로 바꿔야 합니다.
4. 소비자들의 과도한 육류 소비는 기업형, 공장형 축산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그것은 축산동물들에게는 극악하고 잔인한 생활환경입니다. 지나친 육류 소비를 줄이고, 건강하고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축산 동물을 소비하는 것이야말로 소비자의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축산동물들에게는 최소한의 생활권을 보장하는 첫 걸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밥상에서 희생하는 모든 생명들에 대해 감사하고 존중하는 ‘생명밥상운동’을 더욱 확산시킬 것입니다.
올 해 주제를 ‘이제 생명을 택하여라!’로 선언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고통에 대하여 참회하며, 온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모든 생명체들이 조화와 평화를 이루는 일에 앞장서서 기도할 것입니다.
2011년 4월 5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 무 김 영 주
생명윤리위원장 황 문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