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사설칼럼)
[기고] 동물학대도 전통문화인가 ......박창길 (2001.12.14)
한국의 일부 언론과 많은 지식인들이 외국의 한국의 개고기 음식에 대한 외국동물단체의 항의나 언론의 지적을 특정 외국문화의 우월성에 연유하는 문화적 제국주의로 해석하면서 분개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이해이다.
사실 르네상스 이후 근대서양의 철학과 과학은 인간의 이성을 토대로 인본주의를 그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 체계 속에서 자연과 동물은 인간에게 도구나 수단으로만 여겨진다. 이런 주류 세계관의 종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반성하고 극복하려는 것이 서구세계의 생명권 운동의 본질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의 동물보호단체의 이념은 자국의 문화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주류문화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외국의 비판을 전통이냐 외국문화이냐의 이분법적 잣대로 이해하면서 분개하는 것은 그 항의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에는 11세기 노르만왕조 이래 1000년의 오랜 전통인 여우사냥을 둘러싸고 큰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전통적인 스포츠를 반대하는 측은 피비린내나는 ‘야만적 스포츠(barbaric sports)’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블레어 총리는 폐지론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프랑스의 거위 요리에 대해서도 올해 초에 세계동물보호단체(WSPA) 등은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음식’이라고 규정,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이런 운동에 대해서 프랑스인들이 문화상대주의를 내세워 분개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도 쓸개를 뽑아내는 곰사육 문제로 올림픽개최국 선정 시에 동물운동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개고기를 먹는 대만은 90년대 효과적인 동물보호법의 제정으로 동물보호의식이 고취되었고, 그 결과로 대만의회는 금년 초에 별다른 반대없이 개고기의 식용화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과거 먹을 것이 없던 시절로부터 비롯된 인습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자랑할 문화는 아니다. 우리가 진정 지켜야 할 문화는 자비와 어진 마음을 가지고 모든 생명을 대하는 생명문화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인 동물이나 자연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것은 점차 보편적인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또 관습이나 인습도 변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 세대가 어렸던 시절에는 가정폭력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족 내부의 문제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즈음 자기부인을 구타하는 남편은 이웃으로부터 눈총은 물론 법적으로도 보호받지 못한다. 관습이 변한 것이다.
여성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생명권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충고에 ‘우리가 무엇을 먹든 말든 너희들이 무슨 간섭이냐’는 측면에서 볼 일이 아니라 동물학대라는 차원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
사실 우리 문화 속의 생명학대는 과도하다. 우리나라는 전문연구가들 사이에도 ‘동물실험의 천국’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개고기는 이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매년 400만마리 이상의 동물이 아무런 윤리적인 규범과 규제 없이 학대받는 부끄러운 나라이다.
심지어는 실험실에서 사용된 개가 보신탕으로 팔려가기도 하였다. 또 축산가축, 동물원동물, 애완동물 등 어느 것 하나 인간의 무분별한 학대에 방치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외국의 비판에 분개하기 전에 작은 생명들을 위한 아무런 규범과 보호가 없이 지난 50년을 보내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외국의 간섭을 논하기 전에 동물학대문화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있어야 하며 이 기회에 이런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입법을 진지하게 논의해보자.
( 성공회대 교수·생명체학대방지포럼 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