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5일, 이 땅에 첫 조상이 터 잡은 이래, 수 천년 이상 부안 일원의 갯벌을 지켜오던 백합은 일단의 어린이들이 모인 새만금 간척 현장에서 '별난 상'을 받았다.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기 위해' 사용가치가 아니라 자연의 존재가치를 옹호하는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은 '모든 갯벌 생명체를 대신하여 조개 중의 조개라 불리는 백합이 세세만년 갯벌에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제5회 '풀꽃상' 본상을 드리고, 새만금 갯벌의 생명권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주었던 그대로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확신으로 '미래세대 환경소송'을 제기한 이 땅의 자랑스런 어린이들에게 부상을 드린 것이다.
크기가 커서 '대합', 조개 중의 조개라서 '상합'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백합. 풀꽃상을 받고 그 이름이 비로소 뭍으로 올라왔지만 백합이라, 백합꽃처럼 하얗기 때문에 백합일까. 아니다. 진한 회갈색 바탕에 뾰족한 삼각 무늬가 다양하게 산재한 백합은 껍질이 하얗지 않다. 새만금 갯벌이 있는 부안 사람들이 입 꽉 다물고 오래 산다고 하여 '생합'이라 하는 백합은 껍질의 둘레가 100밀리미터라서 백합으로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있지만, 길이가 7에서 9센티미터 이상인 백합의 둘레는 사실상 100밀리미터보다 훨씬 길다. 백가지 무늬가 있기 때문에 백합이라 한다는 풍문이 정설 아닐까 싶다.
반복된 매립과 누적된 해안 개발로 자취가 사라진 인천 갯벌에도 드물지 않았던 백합은 잔잔한 담수의 영향을 받는 조간대 모래 갯벌 층의 10에서 15센티미터 아래에 구멍을 파고 들어가 살며, 수온이 따스해지기 시작하는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에 600만에서 700만 개 정도의 알을 낳아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조류와 같은 식물성플랑크톤이나 바닷물에 떠다니는 유기물을 주로 먹으며, 부화 후 대략 7에서 8년이 지나면 너비 5센티미터에 높이가 9센티미터나 되고 길이가 11센티미터에 달하는 대합으로 성장하는 백합의 천적으로 연구자들은 큰구슬우렁이니 피뿔고둥을 지목하지만, 백합이 볼 때 얼마나 터무니없을까. 3년도 채 자라지 않은 청년 백합까지 싹 쓸어 잡아가지 않나, 백합은 물론 자기 후손들의 생명 터전인 갯벌까지 매립하려는 인간 만한 무서운 천적이 또 어디 있으랴.
우리나라 서해와 중국에서 나오지만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부안 계화도나 김제 심포 갯벌의 백합이 최고라는데, 거기는 오랜 세월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 하구에서 유입되는 퇴적물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조국 근대화론'에 몰려 육지로 변하기 이전의 계화도 주민들은 그 지역 백합을 부안으로 가져가 쌀과 바꿔 먹었다는데, 바로 그 일원의 갯벌을 새만금이라 칭하는 정부 당국은 1991년부터 거대한 매립공사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뚜렷한 계획도 없이, 군산 내초도를 거쳐 고군산열도를 지나 부안 해창까지 여의도 130배인 무려 1억2천만 평의 갯벌을 질식사시키는 단군이래 최대의 생명파괴가 진행중인 새만금 일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5t짜리 배 한 척이면 하루 1t 이상의 백합을 걷어올 수 있었던 천혜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장장 33킬로미터의 세계 최장 방조제로 바닷물을 가로막자고 덤벼들기 시작하면서 백합의 생산량은 절반 이하로 격감하고 말았다.
조개탕으로 끓여먹는 동죽이나 젓갈과 칼국수에 잘 들어가는 바지락, 그리고 제법 토실토실한 가무락과 격을 한참 달리하는 백합은 '귀족 조개'라는 애칭에 걸맞게 진상품이었다. 백합을 배불리 먹은 당나라 군사들이 그때부터 힘을 써 나당연합군이 승리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전해지는 변산반도와 계화도 일원에서 백합은 단순히 소득원이 아니다. 차라리 문화이자 역사다. 그러므로, 아직도 백합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계화도 주민들의 백합 예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고급 패류답게 철분 칼슘 핵산 타우린 이외에도 필수 아미노산이 골고루 들어 있는 백합은 영양도 으뜸이고, 탕이나 죽은 물론 구이와 횟감으로 요리해 먹어도 맛과 향이 일품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계화도 주민들은 간 질환, 특히 황달에 그렇게 좋다고 연실 자랑이다.
자신들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따뜻한 감성을 지닌 인간들이 드리는 풀꽃상을 받은 새만금 백합들도 단군이래 최대의 무리로 서울을 찾아야 했다. 2001년 10월 26일, '아, 옛날이여'를 즐겨 노래할 일단의 구시대 우파 인사들이 국립묘지 한 구석을 소리 소문 없이 찾아 들었을 바로 그 날 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선생님들이 여의도 시민공원에서 교육정상화를 위해 밤샘 농성할 적에 백합죽과 백합탕으로 농성자들의 타는 속을 후련하게 풀어주고, 백합을 통해 새만금 갯벌 간척사업의 부당성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2001년 11월 4일, 5회 풀꽃상을 드린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앞마당에서 갯벌 보전의 신념으로 모인 시민단체 회원들의 연대감을 한껏 고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앞마당에서 오랜만에 만난 백합을, 백합을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구워주고 데쳐주고 삶아주고 부침개로 부쳐줄 적에, 이렇게 맛나고 아름다운 백합을 아이들 세대에 다시는 못 먹게된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엔다. 밥 먹고사는 사람은 쌀만 먹는 게 아닌데, 밥 사먹을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밥이 상했거나 없으면 병들거나 굶을 수밖에 없는데, 농약과 유전자 조작으로 오염된 대지와 생태계는 더 이상의 개발도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데, 수 천년 동안 김매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백합과 같이 건강하고 실한 단백질을 농번기도 없이 언제나 무한히 제공해주었던, 뭇 생명의 자궁이자 콩팥이요 허파였던 갯벌을 저렇게 질식시켜도 괜찮을 것인가. 새만금의 백합이 사라져도 중국에서 수입하면 그뿐인가, 유전자 조작된 사료를 먹여 살찌운 살코기 먹으면 그만일까.
전교조 선생님들과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의 회원들 앞에 제 모습을 선보인 백합들은 의식 있는 시민들에게 새만금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려고 부안 주민들의 손에 기꺼이 간택되어 서울로 올라왔는지 모른다. 자식 키우는 부안 사람들 이상, 새만금의 백합들도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 싶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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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커서 '대합', 조개 중의 조개라서 '상합'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백합. 풀꽃상을 받고 그 이름이 비로소 뭍으로 올라왔지만 백합이라, 백합꽃처럼 하얗기 때문에 백합일까. 아니다. 진한 회갈색 바탕에 뾰족한 삼각 무늬가 다양하게 산재한 백합은 껍질이 하얗지 않다. 새만금 갯벌이 있는 부안 사람들이 입 꽉 다물고 오래 산다고 하여 '생합'이라 하는 백합은 껍질의 둘레가 100밀리미터라서 백합으로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있지만, 길이가 7에서 9센티미터 이상인 백합의 둘레는 사실상 100밀리미터보다 훨씬 길다. 백가지 무늬가 있기 때문에 백합이라 한다는 풍문이 정설 아닐까 싶다.
반복된 매립과 누적된 해안 개발로 자취가 사라진 인천 갯벌에도 드물지 않았던 백합은 잔잔한 담수의 영향을 받는 조간대 모래 갯벌 층의 10에서 15센티미터 아래에 구멍을 파고 들어가 살며, 수온이 따스해지기 시작하는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에 600만에서 700만 개 정도의 알을 낳아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조류와 같은 식물성플랑크톤이나 바닷물에 떠다니는 유기물을 주로 먹으며, 부화 후 대략 7에서 8년이 지나면 너비 5센티미터에 높이가 9센티미터나 되고 길이가 11센티미터에 달하는 대합으로 성장하는 백합의 천적으로 연구자들은 큰구슬우렁이니 피뿔고둥을 지목하지만, 백합이 볼 때 얼마나 터무니없을까. 3년도 채 자라지 않은 청년 백합까지 싹 쓸어 잡아가지 않나, 백합은 물론 자기 후손들의 생명 터전인 갯벌까지 매립하려는 인간 만한 무서운 천적이 또 어디 있으랴.
우리나라 서해와 중국에서 나오지만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부안 계화도나 김제 심포 갯벌의 백합이 최고라는데, 거기는 오랜 세월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 하구에서 유입되는 퇴적물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조국 근대화론'에 몰려 육지로 변하기 이전의 계화도 주민들은 그 지역 백합을 부안으로 가져가 쌀과 바꿔 먹었다는데, 바로 그 일원의 갯벌을 새만금이라 칭하는 정부 당국은 1991년부터 거대한 매립공사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뚜렷한 계획도 없이, 군산 내초도를 거쳐 고군산열도를 지나 부안 해창까지 여의도 130배인 무려 1억2천만 평의 갯벌을 질식사시키는 단군이래 최대의 생명파괴가 진행중인 새만금 일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5t짜리 배 한 척이면 하루 1t 이상의 백합을 걷어올 수 있었던 천혜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장장 33킬로미터의 세계 최장 방조제로 바닷물을 가로막자고 덤벼들기 시작하면서 백합의 생산량은 절반 이하로 격감하고 말았다.
조개탕으로 끓여먹는 동죽이나 젓갈과 칼국수에 잘 들어가는 바지락, 그리고 제법 토실토실한 가무락과 격을 한참 달리하는 백합은 '귀족 조개'라는 애칭에 걸맞게 진상품이었다. 백합을 배불리 먹은 당나라 군사들이 그때부터 힘을 써 나당연합군이 승리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전해지는 변산반도와 계화도 일원에서 백합은 단순히 소득원이 아니다. 차라리 문화이자 역사다. 그러므로, 아직도 백합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계화도 주민들의 백합 예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고급 패류답게 철분 칼슘 핵산 타우린 이외에도 필수 아미노산이 골고루 들어 있는 백합은 영양도 으뜸이고, 탕이나 죽은 물론 구이와 횟감으로 요리해 먹어도 맛과 향이 일품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계화도 주민들은 간 질환, 특히 황달에 그렇게 좋다고 연실 자랑이다.
자신들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따뜻한 감성을 지닌 인간들이 드리는 풀꽃상을 받은 새만금 백합들도 단군이래 최대의 무리로 서울을 찾아야 했다. 2001년 10월 26일, '아, 옛날이여'를 즐겨 노래할 일단의 구시대 우파 인사들이 국립묘지 한 구석을 소리 소문 없이 찾아 들었을 바로 그 날 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선생님들이 여의도 시민공원에서 교육정상화를 위해 밤샘 농성할 적에 백합죽과 백합탕으로 농성자들의 타는 속을 후련하게 풀어주고, 백합을 통해 새만금 갯벌 간척사업의 부당성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2001년 11월 4일, 5회 풀꽃상을 드린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앞마당에서 갯벌 보전의 신념으로 모인 시민단체 회원들의 연대감을 한껏 고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앞마당에서 오랜만에 만난 백합을, 백합을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구워주고 데쳐주고 삶아주고 부침개로 부쳐줄 적에, 이렇게 맛나고 아름다운 백합을 아이들 세대에 다시는 못 먹게된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엔다. 밥 먹고사는 사람은 쌀만 먹는 게 아닌데, 밥 사먹을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밥이 상했거나 없으면 병들거나 굶을 수밖에 없는데, 농약과 유전자 조작으로 오염된 대지와 생태계는 더 이상의 개발도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데, 수 천년 동안 김매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백합과 같이 건강하고 실한 단백질을 농번기도 없이 언제나 무한히 제공해주었던, 뭇 생명의 자궁이자 콩팥이요 허파였던 갯벌을 저렇게 질식시켜도 괜찮을 것인가. 새만금의 백합이 사라져도 중국에서 수입하면 그뿐인가, 유전자 조작된 사료를 먹여 살찌운 살코기 먹으면 그만일까.
전교조 선생님들과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의 회원들 앞에 제 모습을 선보인 백합들은 의식 있는 시민들에게 새만금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려고 부안 주민들의 손에 기꺼이 간택되어 서울로 올라왔는지 모른다. 자식 키우는 부안 사람들 이상, 새만금의 백합들도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 싶기 때문에.
답변이 없습니다. 시간: 2001/11/09 금 0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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